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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를 듣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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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박경진
분류 : 개인전 장르 : 서양화
전시기간 : 2026.10.02 ~ 2026.10.18

전시 개요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는 것을 거듭 건네는 일이 있다. 경진은 수신인을 정하지 않은 채 어딘가로 향하고, 그곳에 도착하여 마주한 것들을 바라보고 남기며 다시 돌아온다. 어떤 것은 그곳에 남고, 몸에 남으며, 또 어떤 것은 한참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메아리는 처음의 소리를 되돌려주는 듯하지만, 그 소리가 지나온 거리와 부딪힌 표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품는다. 경진이 건네온 것들 역시 어느 한곳으로 돌아와 끝나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지나며 계속해서 무언가에게 가닿고 있는 것은 아닐까.《메아리를 듣기 위해》는 지난해《untitled : 많은 이름들이 이루는 이야기》에 공명하며 돌아온 하나의 회신이다.


지난여름, 작가의 작업 과정을 뒤따라갔던 날을 생각한다. 같은 곳에 있었지만, 그가 마주한 모든 것을 같은 감각으로 경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다시 작업실에서, 같은 곳을 지나왔으나 서로 다르게 남은 시간의 일부를 마주했다. 경진에게 숲은 한 번 다녀온 뒤 그 모습을 옮겨 그리는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곳으로 향하기 전부터 시작된 마음, 걸으며 멈추고, 바라보는 동안 달라지며, 그 마음은 한동안 그곳에 머문다. 경진이 말하는 사생(寫生)은 눈앞의 대상을 직접 마주하고 그리는 행위이면서, 그 전후로 몸에 남는 감각과 다시 그곳을 향하게 되는 마음까지 아우른다.2 그러므로 사생의 시간은 숲을 떠나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지나온 것을 다시 바라보는 일, 그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마주하고 그것을 다시 그리는 일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지속된다. 어떠한 부재가, 남겨진 공백이,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진이 그리는 것은 눈앞에 있던 풍경을 잃지 않기 위해 붙잡아 둔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지나가기 시작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곁에 조금 더 머무르는 일. 가까이 바라보았던 것과 끝내 다 보지 못한 것, 선명하게 남은 감각과 그 사이에서 희미해진 것들이 작업실의 현재와 만나 화면을 이룬다. 그가 그리는 숲은 어느 한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풍경이라기보다, 여러 번 바라본 시간이 서로 포개지면서도 끝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자리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는 그 시간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이는 자리가 된다. 여기에는 회화와 더불어, 숲을 오가며 남겨진 이미지와 문장, 소리와 사물들이 다시금 구성된 아카이브 작업이 있다. 이들은 그림에 이르기까지의 경로를 증명하거나, 그림 속 풍경의 출처를 밝혀주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장면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이미지와 그때의 시간을 불러오는 소리, 손에 남았던 감각을 환기하는 사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숲과 관계 맺는다.


아카이브는 흔히 지난 일을 보존하고 정리하는 체계로 인식된다. 남겨진 것들은 다시 놓이는 순간, 서로 다른 시간과 관계를 맺는다.3 지나간 시간은 이곳에서 하나의 경험으로 닫히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회화가 아카이브의 결론이 아니듯, 아카이브 역시 회화를 해설하는 주석이 아니다. 서로 다른 형식으로 놓인 작업들은 상대의 의미를 대신 확정하지 않은 채, 그 곁에서 다른 것을 보게 한다. 그림을 먼저 보고 다른 작업을 거쳐 다시 그림 앞에 설 때, 같은 풍경은 이전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어떤 소리와 겹쳐지거나 미처 보지 못했던 선과 여백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서로 다른 작업을 마주한 시간은 같은 그림을다시 바라보게 한다.


전시는 완성된 작업을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일이다. 동시에 그동안 누구에게 닿을지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서로 다른 삶의 시간과 마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경진이 건네온 것들은 이곳에서 하나의 회신으로 돌아오지만, 그 회신은 처음의 발신인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오래 바라본 것과 무심히 지나친 것, 다시 돌아와 마주한 것 사이에는 서로 다른 간격이 생긴다. 그 가운데 무엇이 누구에게 남으며,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 없다. 관객에게 무언가를 되돌려주도록 요청하지 않아도, 이 전시는 이미 여러 방향으로 건네지고 있는 하나의 회답일 수 있다.


돌아온 소리는 다시 어딘가를 향하고, 그곳에 또 다른 시간을 만난다. 작가가 숲에서 돌아온 뒤에도 사생의 시간을 살아가듯, 전시 또한 정해진 기간 안에 모든 것을 전하고 사라지는 일로만 남지는 않으리라 기대한다. 어쩌면 메아리를 듣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돌아올 소리를 기다리는 일만이 아니라, 이미 여러 곳에 닿고 있으나 아직 들리지 않는 것들,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들려오는 것들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일일지도 모른다. 《메아리를 듣기 위해》는 그렇게 도착하고 있는 것들 사이에 잠시 마련된 자리라 생각한다.

전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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